[영화리뷰]세상에서 가장 썰렁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20년전에 봤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다시 봤다.
사실 별 내용은 없는 영화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 디테일한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오랜만에 다시 한번 보자는 마음도 있었고,
아이들이 피아노 연주로 기쿠지로의 여름 OST를 자주 치는데,
정작 제목만 보고는 무슨 애니메이션인줄 알았다고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느낌의 제목이랄까?
그래서 아이들한테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말이다.
*
'세상에서 가장 썰렁한 영화'
영화 보기 전에 린이한테 미리 한마디 해줬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 지루할거다.
재밌는 사건 같은거 없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봐라.
그렇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진짜 세상에서 가장 썰렁한 영화다.
대사도 별로 없고,
사건도 없다.
그냥 엄마 찾아갔다가 헛탕치고 집에 오는 영화다.

난 한번도 이 영화가 코미디영화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영화 카테고리에서는 코미디영화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가 아니다.
하나도 웃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놓고 웃기려고 만든 영화가
하나도 안 웃기면 보는 사람도 민망하기 마련이다.
그건 실패한 코미디영화다.
하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은 단언컨데
코미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안 웃겨도 된다.
중간 중간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개그코드가 나오긴 하는데,
이게 관객을 웃기려는 의도가 아닌 것 같다.
(라고 나는 느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깨알같은 개그는
엄마와의 재회에 실패한 불쌍한 마사오를 위한
기쿠지로의 기구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아니라
마사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개그란 말이다.
철저하게 관객을 무시하고,
극중 인물인 마사오를 웃기려는 영화다.

옛날 일본 영화가 다 그렇고,
기타노 다케시 영화가 그렇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 썰렁한 영화다.
2시간 짜리 영화인데,
영화 절반이 지났는데도 전혀 웃음이 안나온다.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리고 결국 얼마와 만나지 못한
마사오가 시종일관 웃지 않는
그런 모습과 다를바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던 내게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영화가 끝나갈때즈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기쿠지로와 트럭 운전수, 오토바이 일당들의
그 썰렁한 개그들이 웃기기 시작한다.
하나도 안 웃긴데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마침 그 동안 제대로 웃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던 마사오가 웃기 시작한
바로 그 타이밍에 말이다.
내가 마사오가 된거다.
대체 이게 영화가 의도한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마사오가 된 기분이다.
*
그 순간 든 느낌이다.
와- 이 영화는 명작이다.
세상에서 가장 썰렁하고 안 웃긴데,
이렇게 미소짓게 하는 영화가 또 있나?
딱 한번 울고,
딱 한번 웃고 싶다면
추천하는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